청춘과 젊음의 고개를 넘어오면서, 남자란 어떤 존재인지, 남자란 수컷으로 살면서 어떻게 인간으로 진화(進化)해야 하는지를 끝없이 생각하였다.
삶이란 처음 걷는 길이었고 매 순간이 시작이었다. 처음 걷는 길에서 익숙한 여정은 없었고, 다만 냉정한 인연만이 남겨졌을 뿐이다. 처음 겪는 일이기에 실패하고 또 실수하면서도 그러나 걷기를 중단할 수 없었다. 버림이란 용서가 될 수 없는 일이기에, 이 모든 것을 침묵으로 매듭짓기도 하였다.
사랑을 받는 남자는 드물다. 남자는 사랑을 주는 존재에 가깝다. 밤을 새워 편지를 쓰고,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못난 남자도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옛 시절 그녀가 다니던 길목을 찾아가 걸어보는 단심(丹心)어린 단 하나의 사랑. 그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려 다시 태어나는 일도 남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상대의 가슴에 서슴없이 총을 겨누기도 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높은 절벽에 핀 철쭉꽃을 꺾어다 바친 노인의 이야기도 오직 남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사랑을 얻은 후에도, 노동의 고단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을 보전(保全)하기 위해, 들로 밭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위해 아름다운 옷을 준비해야 하고, 그녀를 위해 먹을 것을 그리고 튼튼한 침대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잠들기 전에 남자는 잠들지 못한다.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틈 날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어린 투정을 받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녀의 몸짓을 따라 함께 살아온 육신(肉身)을 부벼보는 긴긴 겨울밤. 하얀 눈 소복한 창가에 겨울별빛이 질 때까지 남자는 그녀를 두고 먼저 잠들지 못한다.
남자는 사랑을 두고 먼저 죽지 못한다. 없으면 외로워할 것을, 나 없으면 굶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여린 그녀의 어깨 위에 세상이란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없기에 남자는 사랑을 두고 먼저 죽지 못한다. 그녀의 무덤 둘레에 고운 영산홍 한 그루 심어 놓기 전에는 남자는 먼저 죽지 않는다.
남자는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남자는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다. 다시 그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남자는 사랑을 떠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운명이 있을 뿐, 남자의 가슴에 영원히 떠나는 들길은 없다. 별이 되어서라도 찾아오고, 별의 운명을 노래하면서 저어기 밤하늘에 빛나고 있을 뿐이다.
창 밖 밤이슬 내리는 새벽, 별빛을 끌어와 그녀의 몸에 덮어주고 눈을 감는다. 그녀가 있기에 삶은 언제나 포근하였다. 사랑해 줄 수 있기에 행복한 것. 받는 사랑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세상의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오직 세상의 남자일 것이다.
사랑을 위하여 다시 돌아오는 별처럼, 억년의 바람이 부는 하늘 아래에서 다시 또 그녀를 위해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찾아오는 별이 운명의 인연이었음은 익히 알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그녀를 위해 밤을 새워 편지를 쓰고, 샘물을 긷기 위해 눈을 부비며 아침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칼럼/에세이 많이 본 기사
|